상기(上記)·신황기(神皇紀)에 통치기록들…
김부식, 단군조선 없앤 ‘이단적 역사’ 남겨
이 을 형
![]()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기자(箕子)는 우리 고조선을 지배한 일이 없다. 한 부족수준의 통치실체가 없는 기자조선은 우리를 지배 할 힘도 능력도 없는 무리였다. 필자는 올해 초 국학원(國學院) 특강에서도 천손(天孫),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로 등장한 것이 중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에 의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이 황제의 나라라고 하는 것도 날조된 웃기는 것임을 이야기 했다. 황제의 출발이 우리 한민족에 의해 등장한 것이고 또한 한(漢)나라 역시 우리나라를 지배한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국사교과서는 광복70년이 되고도 우리나라가 한(漢)나라의 지배를 받고 기자(箕子)와 위만(衛滿)을 우리나라 역사로 편입시켜 가르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한(漢)은 오히려 예맥(銳麥→ 濊貊, 穢貊)에 지배당해 우리나라를 넘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예맥(銳麥)이 극히 강대해 중국을 1천년 동안 정벌하자 증오심(憎惡心)으로 예맥(銳麥)을 예맥(濊貊, 穢貊)이라고 악명을 붙였다. 관자전서(管子全書, 券十一 小稱篇)에 ‘예맥은 흉악하다’ 하고,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공(孔)씨가 예맥에 맥(貉)이라는 짐승이름을 붙인 것은 악을 말한 것이다’고 했다.(海東繹史, 第三, 貉)
고대 중국과 일본은 우리 한민족과 위상을 같이 할 수 없는 상고사가 없다. 이들은 고대사가 빈약한 내용의 역사를 가진 나라들이다. 우리 한민족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살아온 그들은 고대부터, 그것도 당나라시대부터는 중국과 일본이 손발을 맞추어 철저히 우리역사를 뒤집어 놓았다. 중국과 일본이 보조를 맞추어 일본 삼성당편수회(三省堂編修會編)가 펴낸 ‘세계 각국별 세계사의 정리’(世界史の整理, 1975년 발간)에도 조선사는 ‘기자조선, 위씨조선, 한(漢)의 지배, 고구려, 삼국시대, 신라, 고려, 이씨조선, 일본의 지배’라고 했다. 또한 서기전 3세기경 조선에 이주한 중국인이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건국했다고 조작했다. 이번 칼럼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의 허구성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학자 양계초(梁啓超), 사부아(謝扶雅)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수법 역사왜곡” 인정
우리 선조들은 고대부터 바이칼호수에서 유라시아와 중원(中原)을 지배했다. 중국이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과 일본의 식민사관이 우리역사를 천인공노하게도 뒤집어 놓았다. 중국인은 소위 대중화(大中華)에 편향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역사로 터무니없이 위조하고 일본은 철저하게 식민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를 짓밟았다. 지금도 중국은 ‘동북공정’ ‘요하공정’ 등으로 역사왜곡을 진행 중이다.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수법의 창안자는 이미 말 한대로 공자(孔子)로 거슬려 올라간다. 공자는 춘추(春秋)를 저술할 때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수법으로 기술(記述)했는데, 그 때부터 중국이 타 민족에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승리로 위조했다. 이후 후대 중국의 사가들은 공자의 수법을 본받아 중국인 중심의 역사로 뒤바꿔 놨다. 이것은 중국학자 양계초(梁啓超), 사부아(謝扶雅) 등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너무나 터무니없게 중국을 중심으로 위조한 중국의 허구역사를 따라갔다. 이들이 펴는 논리의 큰 맥(脈)은 ‘주 무왕(周 武王)이 은(殷)을 멸한 후에 기자(箕子)를 조선왕으로 임명하고 기자(箕子)가 주 무왕(周 武王)의 임명을 받아 조선왕이 되어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하고, 연인(燕人) 위만(衛滿)이 다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계승하여 한민족(韓民族)의 지배자가 되고 한무제(漢)武帝)가 또한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정복하고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여 완전히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하였다’는 주장이다. 이는 모 두 거짓된 허구(虛構)이고 거짓 기술(記述)이다.
삼국사기 김부식, 단군조선 역사 없애고 위조까지 ‘이단적역사’ 기록 오늘까지 이어져
서전고명편(書傳顧命篇)에 보면 “상서금고문주소(尙書今古文注䟽 卷二十五)에 주역(周易) 철학(哲學)은 하도(河圖)에서 나오고, 천도(天道)라 칭하는 홍범구주(洪範九疇)가 한국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기자(箕子)는 중국인도 아니고 은(殷)의 시조 성탕(成湯)의 16세손(世孫)이며 동이족(東夷族)에 속한다. 서전홍범장(書傳洪範章)에 ‘기자(箕子)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주 무왕(周 武王)에게 전도(傳道)하였다’하고, 그 주(注)에 ‘기자(箕子)가 주 무왕(周 武王)의 신하(臣下)되는 것은 불가(不可)하나, 천도(天道)를 전하는 것은 가(可)하다고 하였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주 무왕(周 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왕에 봉한 사실도 없고 기자조선을 통치한 구체적 기록도 전무하다. 그럼에도 어처구니없는 역사변조는 우리한민족의 역사를 황폐화 시켰다.
더욱이 김부식(金富軾)같은 자는 중국에 요공(要公)하여 잘 보이려고 많은 단군자료를 쌓아두고서도 단군조선마저 없애고 이단적 역사(異端的歷史)를 위조해 자비적(自卑的)적 역사관으로 국가와 민족정기를 잃게 하고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게 망가뜨렸다. 김부식은 ‘우리 한민족이 중국의 후손(後孫)이요 단군시대부터 중국을 섬기었다’는 식의 이단적 역사(異端的歷史)를 위조·기술해 ‘삼국사기’를 펴냈다. 그는 한민족의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하여 자주자존의 역사를 잃게 하고 가치관을 변질시켰다.
중국인들은 역사를 자기 뜻대로 재구성했지만 역사책과 달리 지리책만큼은 변조 할 새가 없었다. 중국의 세계지리지인 산해경(山海經)에 고조선이야기가 나온다. “(고)조선인들이 한문을 쓰게 된 뒤 나라이름을 ‘아사달’에서 조선(朝鮮)이라 하고 배달임금을 단군(檀君)이라고 했다”하고 ‘조선’의 음이 ‘조선(潮仙)’과 같다는 설명이 나온다. 여기서 조선(潮仙)이란 단순히 그 음을 차용한 것이다. 중국인도 제대로 기록한 조선을 김부식(金富軾)은 아예 거론도 않고 없앴다. 이로 인해 중국과 일본이 이를 인용하고 은폐했다. 전진하고 발전을 해야 할 우리역사가 오히려 국민을 타락하게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서 나온 상기(上記)와 신황기(神皇紀), 단군조선 통치와 역사적 사실들 자세히 열거
기자(箕子)는 은(殷-商) 멸망 시 주(周)의 왕과 왕래하다가 중국에서 살기 어렵게 되자 단기1211년(서기전 1112) 그 집단이 조선 변방으로 피해 와 살게 됐다. 중국에 대한 사대관계에서 벗어난 한말(韓末)부터는 비합리적인 ‘기자왕조 설’을 버리고 중국인 기자왕조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통설이 되고 있다. 기자(箕子)가 은말(殷末)주초(周初)의 실존인물인 것은 사실이고, 그 당시 은(殷)의 유민(流民)과 동이(東夷)의 일부가 동으로 이동한 것도 사실이나, 기자(箕子)가 정치적 망명을 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자는 왕조를 세운 일이 없고 그 통치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고의 역적 짓만을 골라하는 사대주의사가들은 환국과 배달국 및 단군조선도 뭉개고 있으니 슬픈 일이다.
일본에서 나온 상기(上記)와 신황기(神皇紀) 등에서 단군조선의 역사가 엄연히 기록돼 있음은 물론 일본역사의 상반(上半)은 바로 한국역사라는 사실을 양심있는 일본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일본왕조의 발생이 일본 열도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고 대륙인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었다. 즉, 단군 이래의 한국이 일본왕조의 발상지이고 실크로드라는 점이다. 이는 일본에서 나온 고대사서(古代史書) 상기(上記)와 신황기(神皇紀) 등을 통해 분명히 밝혀졌다.
그 밖에도 두 책의 단군통치기록에는 은(殷)나라와 군사적 알력, 제후국(諸侯國)들의 부침(浮沈), 반란의 평정, 단군과 여러 제후들의 모임, 역대 단군의 치적, 나라를 세운 일, 중요관직의 임명, 결혼, 특별한 짐승과 약초이야기 등 국가사직(國家社稷)에 있었던 일들이 기록 되어 있고 단군이 점점 통치력을 상실해 되어가는 과정이 전개된다.
고조선 말기에는 강력한 제후(諸侯)인 남후(南候)가 마침내 여타 제후(諸侯)를 거느리게 되니 조정의 단군을 높이는 이가 드물게 되었다. 마지막 단군 고열가(古列加) 때에는 국가재정을 충당하지 못했다. 고열가(古列加)가 사퇴하고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山神=他界)이 되자 나라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여러 제후(諸侯)가 무력으로 다투되 남후(南候)가 가장 뛰어나서 여러 제후를 거느리고 국정을 다스리니 이에 열국(列國)이 되었다고 북애(北崖)는 쓰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고조선은 없어졌으나 한(漢)이 지배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기자(箕子)가 나설 계제(階梯)가 아니다. 한심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강단파 사이비학자들 중에는 아직도 연구는 하지 않고 망국적인 ‘중화주의’와 ‘식민사관’에 절여진 채 우리의 역사를 망가뜨리는 구제불능의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중국 위서(僞書)의 기록을 내세우며 중고교 국사교과서에 막연한 고조선을 내세우고 또한 기자(箕子)의 후손인 기준(箕準)을 내세워 허구의 역사를 이어가려하나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막연한 고조선을 내세운 것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부정하려는 것이요, 기준(箕準)을 내세운 것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긍정한 것이다. 이는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정체를 모름으로 갈팡질팡 전후가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중국사가(中國史家)와 일본의 무리한 역사조작을 그대로 번역하여 퍼트리는 것은 우리민족을 말살하는 대오류(大誤謬)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다고 없어질 역사가 아니다. (다음에 계속)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메르문명 배낀게 사실로 드러나자 성서학자들 충격~! (0) | 2015.12.27 |
---|---|
한민족 ‘삼황오제’ 빼앗아 중국사 뿌리로 날조했다~! (0) | 2015.12.27 |
수표 분실시 대처법 (0) | 2015.12.27 |
★ 한자는 우리글이다. ★ (0) | 2015.12.27 |
각종 매듭법 (0) | 2015.12.27 |